‘더불어 살아가기’를 위한 전 세계의 연대, 2023 글로벌 난민 포럼
‘더불어 살아가기’를 위한 전 세계의 연대, 2023 글로벌 난민 포럼
지난 2018년 12월,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전 세계 강제 실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유엔 총회는 ‘난민을 위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on Refugees, 이하 난민 글로벌 콤팩트)’를 공식 채택했습니다.
대규모 난민 발생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난민 글로벌 콤팩트는 4년에 한 번씩 국제사회가 모여 난민 보호와 지원을 위한 모범 사례와 진행 경과를 공유하고, 더 나은 기여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주도로 2019년 처음 열린 이 자리가 바로 ‘글로벌 난민 포럼(Global Refugee Forum)’입니다.
1회 포럼 이후의 이행 경과를 점검하고 그동안 규모나 내용 면에서 더욱 심각해진 강제 실향 문제의 지속 가능한 해결책 마련을 위한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해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2023 글로벌 난민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법조계, 시민사회는 지난 1회 포럼에 이어 이번에도 난민 글로벌 콤팩트 이행을 위한 다양하고 폭넓은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종교계는 난민 글로벌 콤팩트 이행을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인 ‘전 사회적 접근(Whole of Society Approach)’을 기반으로 한 ‘더불어 살아가기’를 주제로 한국종교인평화회의 7개 회원 종교인 기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주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와 한국이슬람교중앙회까지 8개 종교가 공동으로 서약을 발표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개별 종교가 글로벌 난민 포럼에 서약을 제출한 경우는 있지만 한 국가 내 여러 종교가 공동으로 서약을 발표한 것 은 지금까지 글로벌 난민 포럼에 제출된 전 세계 3,000건 이 상의 서약 가운데 최초입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130여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2023 글로벌 난민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회원국들은 1억 8백여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강제 실향민을 위한 국가별 정책대안들을 제시하는 등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다. 국내 7개 종교가 참여 중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를 포함한 14명으로 대표단이 난민 보호에 앞장설 것을 약속하는 ‘대한민국 종교인 공동서약’을 발표하여 참가 자들로부터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
KCRP 대표회장 자격으로 유엔의 초청을 받아 이번 포럼에 참여하기 전에는 난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시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12월 12일 제네바 세계 기독교 교회협의회 본부의 ‘난민을 위한 교회’에서 세계 각국의 종교인들이 난민을 위해 간절 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난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한국 종교계 대표로 세계 종교인들 앞에서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후 진행된 개막식은 130여 회원국 대표들이 난민 문제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설명하고 평가받는 자리였고, 폐막까지 다양한 대화와 토론을 해나갔다. 특히 12월 13일 저녁 개최된 ‘난 센 난민 상 시상식’에서 2,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난민 지원 활동가나 단체가 소개될 때마다 뜨겁게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케냐의 난민 청소년들에게 10만 여권의 책을 전달하며 난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옹호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글로벌 수상자로 선정된 소말리아 출신 ‘압둘라히 미레’는 난민 지원이 선진국 출신보다 난민을 체험 한 중저개발국 출신들에게 더 간절하고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유엔은 인종, 종교, 민족, 신분,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난민 은 주로 인권침해와 박해, 기아와 기근, 기후변화, 전쟁 등의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는 난민 문제의 영구적 해결책으로 자발적 본국 귀환, 현지 통합, 제 3국에서의 재정착 등을 제시하며 이 같은 방식의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이번 포럼을 통해 인식하게 됐다.
유엔난민기구의 자료에 의하면 세계 강제 실향민은 2022년 기준 1억 840만 명 수준이며, 대한민국의 경우 1994년부터 2022년까지 난민 지위를 신청한 84,922명 중 1,338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평균 인정률 1.57%로 OECD 가입 37개 국 평균 24.8%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낮은 것은 ‘단일민족’이라는 국민적 정서에 기반한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시각,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하는 가짜뉴스,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식 부족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2018년 예멘 난민 사례는 우리 사회의 난민에 대한 혐오와 거 부감 등 국민적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좋은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민족적으로 난민을 경험한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을 피해,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해 간 수많은 동포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난민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 대열에 나서 야 했던 사람들도 모두 난민의 삶을 견딘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집단으로 난민을 경험한 민족이고, 일제 강점과 전쟁이 예기치 못한 사건인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과 상황에서 난민으로 내몰릴 수 있다. 우리도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난민을 배타 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배척할 것인가. 이제 우리도 난민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사회적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는 우리도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난민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하며, 이를 통해 정부에도 전향적 난민 정책을 촉구해 나가야 한다.
법무부에 난민 관련 부서와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난민 문제를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하며, 인도적 차원의 난민 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2023 글로벌 난민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머물면서 늦은 밤까지 공식 행사가 이어져 여유 시간이 없었지만, 참가자들 모두 피곤한 줄 몰랐다. 스위스 출국 전부터 난민으로 시작해 귀국하는 시간까지 난민으로 채워져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그만큼 뿌듯한 시간이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새해 전 세계 1억 840여만 명의 난민에게도 안정되고 희망 있는 삶, 평화로운 삶의 조건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 중부일보 기고문 발췌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