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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호-WithYou가 만난 사람] 난민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 시리아 난민 출신 라연우 씨 기고문

스토리

[가을호-WithYou가 만난 사람] 난민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 시리아 난민 출신 라연우 씨 기고문

30 9월 2024
자신의이야기, 난민의이야기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연사로 강연 중인 모습

안녕하세요, 유엔난민기구 후원자 여러분. 대한민국 국민, 제주 라(羅)씨, 라연우입니다.

저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피난한 난민 출신이고, 지금은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제주도에서 이주민을 돕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리아를 떠날 때는 18살이었습니다. 2011년 전쟁이 터져  건강한 젊은 남성이라면 반드시 군대에 가야 했는데, 징집되어 같은 동포를 향해 총구를 겨누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이 싫었습니다.  게다가 반정부시위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지라 저는 정부에서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시리아에서는 여성인 친구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문란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를 만나도 죄인 취급도 받았습니다. 투표를 할 때도 군인들이 투표함 앞에 서서 확인하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과 강제 징집으로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고,  해가 거듭될수록 시리아를 떠나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가슴 한켠에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를 떠나야 했을 때, 당장 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래서 가장 가까운 튀르키예로 먼저 갔습니다. 한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보고 방문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사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고 왔습니다. 비자 만료 전에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이 징집 대상인 저를 찾으러 집을 찾아왔고, 부모님이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난민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아를 떠날 때, 시리아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 오자마자 시리아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시리아인이 없는 제주를 선택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제주는 저의 고향이 되었고 새 고향의 이름을 따 제주 라 씨가 되었습니다.

제주 해안가 플로깅 활동에 참여한 라연우씨 ©라연우님 본인 제공 사진

제주 해안가 플로깅 활동에 참여한 라연우씨 ©라연우님 본인 제공 사진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저는 책을 보면서나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어요. 공부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부터 밭에서 무를 뽑다가도,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이 궁금하면 물어봤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한국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게 되니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바리스타도 되고 아랍어권에서 온 난민들을 통역도 하고 법무부나 학교, 또는 단체들에서 강의하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익히다 보니 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했고, 한국 역사를 알아야겠더라고요. 한국 역사의 출발점인 단군과 고조선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난민 인정을 받고 바로 귀화를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인도적 체류 허가 비자를 받고 살았었는데 국내에서 이동의 자유는 있었지만,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와서 정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한국 사회에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한국인이 되었는데도, 난민 인도적 체류 허가 비자로 살아가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도 한국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는 내용이 출제되는 귀화 시험을 보았고 2020년에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로웠고, 당시 제주는 외국인에 익숙하지 않아 낯선 시선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제주는 저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제주에서 지내면서 아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기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따뜻한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돌아보면 제 옆에서 항상 저를 지지하고 도와 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이주민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멘토단에서 멘토 강사로 활동하고, 여러 학교를 찾아가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도 하고 있습니다. 인권 및 난민에 대한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꿈을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환경을 지키는 활동도 계속하고 싶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저의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