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ites icon close
Search form

해당 국가 사이트를 검색해 보세요.

Country profile

Country website

콩고 난민 출신 태권도 선수, 태권도 종주국에서 품새를 선보이다

스토리

콩고 난민 출신 태권도 선수, 태권도 종주국에서 품새를 선보이다

태권도 품새 태극 6장. 팔괘의 감(坎)을 의미하며 물을 상징하는 이 기술은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관객들이 가득 들어찬 고양 킨텍스 경기장 한가운데, 검은 띠를 두른 선수가 홀로 무용하듯 태극 6장을 선보입니다. 경기장에 선 선수의 이름은 가스토 은사주무키자(Gasto Nsazimukiza).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입니다.
29 1월 2024
Gasto Nsazimukiza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준비 자세를 취한 가스토 선수

2022년 4월 진행된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가스토는 경기 둘째 날인 22일,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가 마련한 특별 무대에 섰습니다. 유일한 난민 선수로 경기장에 오른 그는 대회를 통틀어 가장 큰 박수와 함성을 받으며 부드럽고도 절도 있는 동작으로 태극 6장 시연을 멋지게 마쳤습니다.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태극6장을 시연하는 가스토 선수

10살의 나이에 고국의 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된 가스토는 부룬디와 우간다를 거쳐 케냐 카쿠마(Kakuma) 난민촌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태권도를 배우게 된 그는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프리카 지역 대회에서 연이어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태권도를 처음 접한 건 2012년 카쿠마 난민촌에서였어요. 그 후로 계속 훈련하다 2015년에 태권도와 육상 유망주 선발을 위해 열린 체육대회에 참가했는데, 그 대회를 계기로 나이로비에서 정식으로 태권도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운동은 삶 그 자체이자 일상입니다.

“눈 뜨자마자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에는 태권도 훈련이나 육상 훈련을 하죠. 저는 태권도뿐만 아니라 육상 선수이기도 하고, 요가 강사로 자원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취미요? 여유 시간이 생기면 주로 운동합니다 (웃음).”

그가 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스포츠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다양한 사람들을, 오늘 대회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와 같죠.”

응원 카드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한 관중들과 시연이 끝난 후 먼저 다가와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한 가스토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만난 가스토 선수와 한국 대표팀 선수들

이번이 첫 방문이지만 한국은 가스토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입니다. ‘차렷’, ‘경례’ 등 한국말 구호에 맞춰 진행하는 태권도 선수이다 보니 하나, 둘, 셋, 시작 같은 한국어가 익숙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국은 태권도 종주국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이대훈 선수가 저의 롤 모델입니다. 이대훈 선수의 경기 영상을 보고 올림픽 무대를 꿈꾸게 되었어요. 지금도 발차기나 막기 등 잘 풀리지 않는 기술이 있으면 이대훈 선수의 영상을 찾아봅니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태권도복처럼 이제는 자신의 일부가 된 태권도이지만, 카쿠마 난민촌에서 태권도를 처음 배우던 기억은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의 태권도장에서 승급할 때마다 주는 태권도 띠 순서를 보며 유단자로 승급하기 전에 자신이 썼던 띠 색깔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흰띠’, ‘흰색+노란색 띠’, ‘노란띠’, ‘노란색+초록색 띠’, ‘초록띠’, ‘파란띠’, ‘파란색+빨간색 띠’, ‘빨간띠’ 단계를 거쳤어요. ‘초록색+파란색 띠’ 단계는 건너뛰었죠 (웃음).”

​태권도를 배우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스포츠는 자아존중감을 길러줍니다. 자기 자신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아존중감은 가스토에게 인생의 화두와도 같습니다. 케냐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

“우리가 일상이라고 느끼는 것들을 제대로 보장받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훈련의 연속인 일상에서도 취미생활이 ‘훈련’이라고 말하는 가스토의 꿈은 2024 파리 올림픽을 향해있습니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는 올림픽 출전 기준 점수에 도달하지 못해 출전이 무산됐습니다. 지금은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가스토 선수

태권도 품새 중 태극 6장을 가장 좋아해서 이번 특별 무대에서도 시연했다는 가스토. 조용히, 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자신을 갈고 닦은 그의 구슬땀이 2024년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해 주세요!